우리 교실 이야기

학기 말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주수영 2024. 7. 5.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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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말이다. 슬슬 방학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학급에서 해야 할 일, 학교 업무상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 학급에서는 일단 성적을 입력해야 한다. 이른바 평가. 옛날과  다르게 수치화된 통지표가 아니다. 평가는 국어, 사회, 수학, 과학, 음악, 미술, 체육, 도덕, 영어, 실과 이렇게 열 과목이다. 입력 단계는 세 단계. 잘함, 보통, 노력 요함 중 하나를 선택한다. 그동안 했던 수행평가를 바탕으로 학생들의 성취를 성적 시스템-학교에서는 나이스라고 부른다-에 넣는다. 과학과 영어는 전담 선생님이 있기에 그 선생님들이 입력한다. 이 글을 어느 정도 쓴 후 거기에 접속해 이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학기말 학생들을 관찰한 담임 의견을 쓴다. 정식 명칭은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이라고 한다. 내가 제일 신경 쓰는 부분이다. 학생들의 한 학기 학습태도와 생활태도를 종합적으로 적는 것이다. 부정적인 내용은 가급적 쓰지 않는다. 써야 할 경우 긍정적인 변화 가능성을 같이 써야 한다. 이것이 지침이다. 예를 들어 친구들과 다툼이 많은 학생은 '조금만 더 양보하는 태도를 가진다면 교우관계의 긍정적인 변화가 기대됨.' 숙제를 해오지 않는 학생에게는 '숙제를 꼬박꼬박 하는 습관을 가진다면 책임감 있는 학생으로 성장할 것임.' 이런 식으로. 경험 상 이 작업은 한꺼번에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하루에 4-5명씩 일주일 정도 기한을 잡고 하면 된다. 빨리 끝내려는 욕심으로 한꺼번에 하다 보면 뒤로 갈수록 지친다. 문장의 힘이 없어진다. 오늘은 4명이 목표다. 그리고 학교 업무를 마무리해야 한다. 내가 맡고 있는 업무는 선생님들의 연수 비용을 지원하는 것이다. 전에 있던 학교는 규모가 작았다. 그래서 1년이 끝나는 시기에 한꺼번에 이걸 했었는데 우리 학교는 한 학기에 한 번씩 일 년에 두 번 정리한다고 담당 부장이 말했다. 담당 부장은 나의 직장 상사다. 나보다 몇 살 젊은 여자 선생님. 학교에서 굵직한 업무를 하는 두 명(교무부장, 연구부장) 중 연구부장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학교는 큰 역할을 하는 교사들이 여자다. 교장은 남자지만 두 교감, 교무부장, 연구부장이 모두 여자다. 요즘은 여자 교장, 교감 일명 관리자 그리고 직장으로 치면 상사(학교에서는 부장)가 대부분 여성이다. 과거와 다른 분위기다. 여교사들은 어떻게 이렇게 학교의 앞자리를 희망하게 된 것일까? 그동안 남성들의 등살에 밀려 참고 있었던 것일까? 가사 분담이 여성들의 진출로를 열어 준 것일까? 아무튼. 연수비 지원 업무를 오늘은 안내를 해야 한다. 지침을 보니 1인당 1년에 25만 원이다. 선생님들이 유료로 받은 연수비와 도서 구입 비용을 지원한다. 연구부장은 한 학기치만 지원하자고 했다. 난 1년 치를 한꺼번에 지원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사정이 생겨 학교를 나오지 못하게 되거나 불미스러운 일로 학교를 떠나야 하는 경우-그런 일은 거의 없지만- 1년 치를 미리 지원하면 곤란해질 수 있다. 지침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6개월만 근무하면 절반만 지원한다. 그럼 7개월을 근무하면 25만 원을 1/12로 나눠 개월 수에 맞게 지원한다. 그럼 한 달을 다 채우지 못하면. 그것도 나와 있다. 15일 이상을 근무하면 한 달로 친다. 깔끔한 안내다. 이렇게 해야 교육청에서는 질문을 최대한 적게 받는다. 질문 세례 때문에 지치는 것을 예방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학급에서 처리할 일 중 출석 관련된 서류도 정리해야한다. 아파서 결석을 한 학생들은 결석계를 내야 한다. 그것이 빠진 것이 없는지 확인한다. 게다가 우리 반은 전학 가는 학생이 있다. 이 학생  것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 예진이. 여자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 축구부가 있는 학교로 간다고 얼마 전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예진이는 학기 초부터 눈에 띄는 아이였다. 선입견은 아니지만 여자 아이가 축구를 이렇게 좋아하는 경우는 처음 봤다. 엄마는 나와의 상담에서 그냥 취미로 축구를 하면 좋겠다고 했다. 운동선수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다른 것들을 접고 그 길을 가는 것은 부모에게 마음이 무거운 것이다.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 걱정이 앞설 것이다. 여자 축구부가 있는 학교는 드물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전에 내가 있던 학교와 가까운 학교인데 여자 축구부가 있는지는 몰랐다. 예진이는 글쓰기에서 헤어지는 것을 무척 아쉬워했다. 혼자 울기도 했다고 한다. 며칠 전 예진이는 자기가 전학 가는 걸 친구들에게 알렸다. 복도에서 몇몇 여자 친구들이 울었다. 남자 친구들은 그걸 보고 놀렸다.-그런 나이다- 나는 남자 친구들을 제재했다. 우리 반 복도에는 그때 어린 왕자에 나온 말이 현수막으로 걸려있었다. '길들여진다는 건 눈물을 흘릴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거야.' 학생들은 그 말을 몸으로 알게 된 것이다. 좋은 친구들, 정든 학교, 익숙한 선생님. 예진이는 그 모든 걸 차치하고 전학을 선택했다. 어리지만 마음이 단단한 아이다. 나로서는 예원이의 꿈을 응원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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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6시다. 우리 학교는 아침 7시에 자동으로 전기가 들어와 컴퓨터를 켜고 일을 할 수 있다. 그런데 학교를 지키시는 숙직 기사님께 부탁을 하니 6시에 수동으로 전기가 들어올 수 있게 해주었다. 이걸 귀찮아해서 짜증을 내거나 안된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면 7시부터 일을 해야 한다. 아침에 집중이 잘 되는 나로서는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은 아침에 해야 한다. 절차에 맞게 자동적으로 머리가 돌아가는 일은 수업이 끝나고 해도 그럭저럭 진행이 되는데, 글을 쓰는 일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일단 수업이 끝나고 나면 진이 빠진다. 그래서 힘이 필요한 일은 아침에 처리한다. 게다가 오늘은 아들을 데리고 치과에 가야 한다. 가족돌봄휴가라는 것이 있다. 미성년 아이의 돌봄을 위해 쓸 수 있는 휴가다. 아이가 한 명이면 2일, 두 명 이상이면 3일을 1년 동안 쓸 수 있다. 하루를 8시간으로 계산해 나눠서 쓸 수도 있다. 어제 교감 선생님의 안내가 있었다. 출산 장려의 일환으로 이 제도가 확대되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동안은 아이가 두 명 이상 즉 세 명이든 네 명이든 1년에 3일의 가족돌봄휴가를 줬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세 명 이상부터 1일을 추가시켜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 명이면 2일, 두 명이면 3일, 세명이면 4일이다. 아이고 감사해라. 물론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오늘 수업할 자료를 살펴본다. 국어 시간에 토의를 할 예정이다. 교사용 지도서를 펼친다. 토의와 회의의 차이에 대해 나와있다. 회의는 토의에 의사 결정 과정이 더해진다고 한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합리적인 해결 방법을 가진다는 점에서 토의와 회의는 같다. 그런데 회의는 결정이 따른다. 그러고 보니 전교학생회의, 교직원 회의, 이사회 회의 등등 토의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 결정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토의 + 결정 = 회의. 다음 주에는 다모임 회의가 있다. 교직원 회의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결정을 할 것이다. 급식 시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우리 학교는 급식실 인력난이 심각하다고 한다. 3교대로 점심 급식을 먹고 있다. 3교시 후 12학년, 4교시 후 34학년, 5교시 후 56학년. 그런데 이걸 2교대로 바꾼다고 한다. 그러면 123, 456 이렇게 밥을 먹으면 된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선생님들은 뒤에 밥을 먹길 원한다. 5교시인 경우 3교시 후 밥을 먹으면 밥을 먹고 두 시간을 더 수업해야 하는데 그게 싫은 것이다. 심지어 밥을 뒤에 먹으면(5교시 후) 밥을 먹고 학생들을 바로 보낼 수도 있다. 어쩌면 이게 더 큰 이유일 수도 있다. 우리 학년 선생님들은 다음 주 다모임 회의를 우려하고 있다. 학년의 이해가 얽힌 일에서 때로 교사는 투사가 된다. 평소 보지 못했던 선생님들의 민낯을 보게 되기도 한다. 갑자기 회의에 가기 싫어진다. 이건 토의가 아니니까. 학교에서 이게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안이 성과급 관련 회의이다. 성과급이란 일 년 동안 교사의 성과를 3등급으로 나누고 그것에 따라 돈을 돈을 준다. S, A, B 등급이 있다. 학교에서 맡은 업무와 학년에 가점을 매긴다. 어떤 업무와 몇 학년에게 가점을 더 줄 것이냐?를 가지고 회의를 한다. 우선 학년 선생님들이 의견을 모아 학년의 대표가 모인다. 여기에 투사들이 많다. 우리 학교 규정을 보니 학년 가점에서는 6학년, 1.5학년, 2.3.4학년 순이다. 그래봐야 등급 간 1점 차이지만 SAB등급 경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민감한 것이다. 그럼 등급 간 돈은 얼마가 차이 날까? 100만 원, 150만 원. 그 정도 될 것이다. 난 별로 관심이 없다. 1000만 원, 1500만 원이 되면 나도 투사가 될 것 같다. 

 

사회 교과서를 살펴본다. 인권에 대해 공부하는 중이다. 인권 실현을 위해 노력한 위인들이 교과서에 나온다. 어린이 인권 신장에 애쓴 소파 방정환 선생님, 서얼 철폐를 최초의 한글 소설로 쓴 허균, 국제엠네스티(사면위원회)를 설립한 피터 베넨슨, 훈맹정음 박두성,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수업 시간 중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 분들이 보호하고자 했던 어린이, 여성, 노동자, 흑인, 맹인입니다. 공통점은 뭘까요? "

"약자요." 한 학생이 맞혔다. 강자의 권리는 스스로 보호된다. 다른 사람들이 쉽게 침범하지 않는다. 약자는 그렇지 못하니까. 지도서에는 전태일이 분신한 것을 이야기 한다면 학생들이 정서적인 충격을 받지 않도록 유의하라고 나와 있다. 전태일은 그 자리에서 사망한 것이 아니다. 평화 시장에서 분신한 후 병원으로 옮겨졌다.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방치되었다.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의사는 전태일의 어머니에게 당장 돈이 없으면 서울시청 근로감독관에게 보증이라도 받아오라고 했다. 당시 근로감독관은 전태일과 함께 병원에 와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부탁을 거절했다. 숨이 거두기 전 그가 어머니에게 한 말은 '배고프다.'였다.

 

수업 준비를 끝내고 나면 이제 학생들을 기다리면 된다. 마치 개업 준비를 마친 식당 주인이다. 재료를 다듬었고, 요리는 끓이기만 하면 된다. 맛있어야할텐데. 현수막을 교체해야겠다. 우리 반 복도는 넓게 공간이 있다. 어린 왕자 현수막은 이제 역할을 다했다. 해야 할 일이 끝나면 마음이 편하고, 하고 싶었던 일이 마무리되면 뿌듯하다. 현수막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방학이 오는 그날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자. 사고는 마음을 놓으면 일어나니까. 학생 때도 방학을 기다리긴 했지만, 교사가 되니 더 방학을 갈구한다.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 현수막은 이렇게 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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