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학생들을 만나고 이제 6월도 끝나갑니다. 그동안 학생들과 있었던 일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이제 어느 정도 학생들과 길들여졌고, 학생들 서로도 그렇습니다. 여러 가지 일 중 기록해 두어야 할 것을 남기고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찾아보려고 합니다. 머릿속에 있던 것이 글자로 변하면 다르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아니 거의 대부분 그랬습니다.
얼마 전 학생들에게 글쓰기 제목으로 '우리 반 친구 ~~은(는)'이라는 걸 줬습니다. 하루에 한 편씩 쓰는 글쓰기 숙제입니다. 어떤 여학생이 남학생(지완)에 대해 칭찬하는 얘기를 합니다.
지완이는 괜찮은 친구 같아요. 두 달 동안 짝이어서 친해졌어요. 가끔 장난을 치기는 하지만 내가 무언갈 잃어버리면 같이 찾아주고, 재밌는 마술을 보여줍니다.
대충 이런 얘기입니다. 그리고 같은 날 다른 여학생의 글쓰기에 또 지완이 얘기가 나왔습니다.
지완이는 괜찮은 친구 같아요. 이게 제목입니다. 문장이 똑같습니다. 같이 썼나 싶을 정도로. 제목 옆에는 귀엽게 (좋아하는거 ×) 우리 반 지완이는 생각보다 괜찮은 친구같다로 시작합니다. 나와 잘 맞는 친구이고 장난도 많이 친다. 가끔 친절한 모습도 있다. 다른 학원에서도 만났고, 반에서도 친한 친구이다. 남, 여 사이에는 친구가 없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건 좀 아니라 생각한다. 남자든 여자든 친구가 될 수 있다. 저는 이 여학생의 글에 이렇게 댓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지완이의 글쓰기를 봅니다. 쓰지 않았습니다. 요 며칠 지완이가 숙제를 해 오지 않습니다. 글쓰기가 귀찮아졌나? 그럴 수 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숙제라서 묵묵히 잘하던 학생들도 시간이 지나며 하나, 둘 지치기도 합니다. 저는 매일 체크를 하지만 남겨서 숙제를 하게 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글쓰기의 재미를 알아가는 학생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어떻게든 할 일을 하게 해서 책임감을 키워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방법을 쓰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할 일을 하게 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 그런데 그것 못지않게 어떤 것에 흥미를 잃게 하지 않는 것. 적어도 무언가를 넌더리 나게 싫어하게 하지는 않는 것. 그것이 저에게는 또한 중요한 목표입니다. 다만 얘기는 합니다. 내일은 조금이라도 쓰자. 바쁘면 간단하게라도라는 정도로.
글쓰기를 하며 쓰는 재미를 알고, 거기서 의미를 발견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한 편 한 편의 글이 쌓여 한 권이 끝날 때는 '내가 무언가를 완성했구나.'라는 꽉 찬 뿌듯함을 느낍니다. 저는 그것을 학생들에게 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것과 다르게 한편으로 힘겨워하는 학생들을 쫓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어떤 선생님은 자기가 할 일은 꼭 하게 하기도 합니다. 억지로라도 해야 숙제에 대한 의무를 알고, 그것이 몸에 배어 습관이 되면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저는 그것에 100% 동의합니다. 다만 그렇게 끝까지 할 일을 하게 하는 것과 천천히 기다리며 스스로 하도록 유도하는 것 중에서 교사는 선택해야 합니다. 저는 후자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철학의 차이입니다.
숙제는 하지 않았지만, 지완이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마지막에는 숙제 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답을 기다립니다. 문이 열리기를 바라며.
학생들이 서로 가까워지다 보니 작은 다툼이 이곳저곳에서 생깁니다. 어떤 남학생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 학생의 긴 글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학원을 옮겼는데 두 친구가 배신했다고 한다. 선생님께서 제재를 해주셨으면 좋겠다.
학기 초부터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쓰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더 큰 다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학생들과 개인적인 얘기를 할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줄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집에서 학교를 생각하며 글로 이렇게 남겼다는 것은 깊은 것입니다. 교사는 여기서 개입해야 합니다. 그래야 더 큰 일을 미리 막을 수 있습니다. '그게 그리 중요한 일인가요?'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교실에 있어 보니 이게 더 커지는 경우를 왕왕 봤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얘기해 줬습니다. 해당 학생들에게도 개별적으로 얘기했습니다.
어느 날 한 여학생은 이렇게 하소연했습니다.
글쓰기가 너무나도 힘들다. 제목 고르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린다. 막상 선생님이 주신 제목으로는 쓸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치만 쓰고 나면 뭔가 내 자신이 조금 뿌듯하당. 그래도 글쓰기는 싫다. 평일에 쓰는 건 괜찮은데 주말에 글쓰기가 밀리면 엄청 고생해야 된다.
진심이 느껴집니다.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잘 썼습니다. 그래서 저는 평소와 다르게 칭찬 스티커를 두 개 줬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험담하는 얘기를 듣게 되면 무척 기분이 나쁩니다. 학생들은 그걸 뒷담이라고 부릅니다.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나에 대한 나쁜 얘기를 나눴다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불쾌합니다. 그렇다면 정반대의 경우는 그 효과가 더 크다는 얘기입니다.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나의 칭찬이 오고 갔다면. 그리고 그걸 시간이 좀 지난 후 듣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 거기다 그게 이성이라면 효과는 더할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그 기분 좋은 경험을 주기 위해 저는 이렇게 한 것입니다. 어느 날 한 여학생이 자기 짝 남학생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이번 내 짝은 윤수이다. 윤수는 장난을 많이 치지만 친절한 친구다. 접착제 알러지가 있는 나를 도와주거나, 지우개를 빌려주는 등 고마운 친구이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또 잘한다. 수영도 잘하는 편이다. 이렇게 내 짝을 소개해 보았다.
학교에는 전담 선생님이 있습니다. 담임교사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어느 과목은 중고등학교처럼 전담 선생님이 수업하십니다. 저는 전담 선생님 수업 시간이 궁금해서 '전담 선생님 시간에 ~~~'라는 제목을 줬습니다. 한 남학생이 이렇게 썼습니다.
저는 과학 선생님이 좋아요. 과학 선생님은 과학을 잘 이해하게 알려주고 재미없고 싫었던 과목이었는데 재미있고 시간도 잘 안 갔는데 요즘 시간도 잘 가고 너무 아쉽다. 2학기 때 과학 선생님이 안 바뀌었으면 좋겠다.
과학 선생님께서는 1학기를 마치고 2학기에 다른 학교로 가십니다. 신규 발령 전 잠시 우리 학교에 계약직으로 있는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그런 분들을 기간제 교사라고 부릅니다. 저는 이 글을 그 선생님께서 가시는 날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나에 대한 좋은 얘기를 나눈 것을 시간이 지난 후에 알게 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길게 남은 선생님의 교직을 응원하면서 이 글을 전하고 싶습니다.
하루는 급식실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과학 선생님이 저에게 왔습니다.
"선생님~ 혹시 이따 수업 끝나고 잠시 시간 되시나요?"
"예. 괜찮습니다. 무슨 일 있나요?"
"별건 아닙니다. 선생님께 개인적으로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학교에서 이런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혹시 우리 반 학생이 과학 수업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나? 약간의 불암감이 듭니다.
"예. 그럼 이따 제가 수업 끝나고 연락드릴게요." 제가 말합니다. 시끄러운 급식실에서 일단 대화를 멈춥니다. 수업이 끝나고 전화했습니다.
"선생님~ 저 5학년 0반입니다. 이제 수업이 끝났습니다."
"예. 그럼 제가 교실로 갈까요?"
"아닙니다. 제가 선생님 계시는 협의실로 가겠습니다."
다이어리를 들고 협의실로 갔습니다.
"우리 반에 혹시 무슨 일이 있나요?" 제가 묻습니다.
"우선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의 바른 선생님입니다. 그리고 말을 이어갑니다.
"선생님께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있어서요."
"예. 말씀하세요."
"제가 얼마 후 수업 공개가 있습니다." 대개 학교에서는 경력 3년 이하인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교장, 교감 선생님들께 수업을 공개합니다. 공개 후 그 수업을 같이 얘기 나누며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걸 학교에서는 임상장학이라고 합니다.
"임상장학을 하시는군요."
"예. 맞습니다. 얼마 전 교장, 교감 선생님과 임상장학 사전 모임을 했습니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께서 수업 설계 후 선배 선생님들과 얘기를 미리 나눠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선생님께 부탁을 좀 드리려고요."
"아. 그렇군요. 그런데 제가 선생님 과학 수업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네요. 과학 수업을 전혀 하지 않고 있어서 선생님께서 더 잘 아실 것 같은데요."
"실은 수업 외적인 부분에 대해 여쭤보려고요. 선생님께서는 다른 선생님께서 하시지 않는 걸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어떻게 그걸 하시게 됐는지 그 동기와 의도에 대해서요."
"예를 들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선생님께서 쓰신 학급 안내판은 왜 만드신 건가요? 그 글을 읽고 저도 인상 깊었습니다."
예전에는 반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교실 밖에 걸었습니다. 각 반 교실 앞문마다 작은 액자에 학생들 사진과 급훈, 교사의 이름이 쓰여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하는 학교가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교사의 개인정보 보호와 학생들 사진이 들어가는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어 지금은 안 하는 추세입니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것만 넣습니다. 우리 학교는 아예 학급 안내판이 없습니다. 과학 선생님께서는 우리 반에만 있는 안내판을 보고 궁금했던 것입니다.
"그거요.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 나온 대사예요. 학생들 사진이랑 이름은 혹시 몰라 빼고 제 이름만 넣었고요." 제가 말합니다.
"그렇군요. 그러면 학생들 글쓰기는 어떻게 하다 하게 되신 건가요? 매일 전담 시간이면 그걸 보시던데요."
"학생들은 제가 모르는 걸 알고 있거든요. 그걸 알려고 시작하게 됐어요."
"매일 쓰나요?"
"예. 매일 쓰게 합니다."
"힘들어하지 않나요?"
"그런 친구도 있죠."
"그럼 어떻게 하세요?"
"부담은 주지 않으려고 해요. 글쓰기가 힘들 수는 있지만 적어도 5학년 때 글쓰기 때문에 평생 글쓰기를 싫어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거든요." 지완이가 생각납니다. 과학 선생님께 지완이에게 써준 글을 보여줍니다.
"이런 정도까지 하시는군요."
"예. 거기까지요."
한 학기가 끝나고 과학 선생님은 우리 학교를 떠날 때 자신에 대한 우리 반 학생의 글쓰기를 보게 될 것입니다. 첫 학교 발령을 받는 과학 선생님의 시작이 조금이라도 기분 좋길 바라봅니다.
"그리고 또, 궁금한 게요. 선생님께서는 체육 수업을 직접 하신다고 들었어요. 스포츠 선생님께서 그러시던데 혹시 이유가 있나요?"
우리 학교에는 스포츠 강사가 있습니다. 체육 수업 보조를 위해 학교에서 계약한 분입니다. 말 그대로 보조입니다. 그런데 몇몇 선생님들께서는 이분들을 전담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체육 수업은 상당히 귀찮습니다. 옷을 갈아입어야 하고, 준비물을 미리 챙겨야 합니다. 그래서 스포츠 선생님과 함께하는 체육 수업을 오롯이 스포츠 선생님께 맡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스포츠 선생님은 계약직이기 때문에 그런 불만을 담임 선생님들께 얘기 못 합니다. 다음 해 계약에서 혹시나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체육 수업은 원래 담임교사의 수업입니다. 스포츠 선생님은 보조예요. 몇몇 선생님들께서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아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군요. 저는 스포츠 선생님께서 다 해주시는 줄 알았어요."
"스포츠 선생님과 얘기 나눠보셨어요?"
"예.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혼자 체육 수업을 하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건 아니에요. 스포츠 선생님께 준비물 세팅은 미리 말씀드려요. 수업 진행할 때도 한 팀은 제가 지도하고, 한 팀은 스포츠 선생님께 부탁드리기도 해요. 큰 도움이 됩니다."
이 선생님이 만약 기존의 생각으로 현장에 나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포츠 선생님에게 체육 수업을 전가하는 것은 마치 의사가 간호사에게 대리 수술을 시키는 것입니다. 스포츠 선생님이 배치된 학교의 경우 학기 초 체육 담당 선생님(학교에서는 체육부장이라고 부릅니다.)께서 이렇게 알립니다. 체육 수업할 때 스포츠 강사와 담임교사는 함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있었던 모든 학교에서 그랬습니다. 하루는 체육 수업 준비물을 확인하기 위해 수업이 없는 전담 선생님 시간에 체육관에 갔습니다. 스포츠 선생님께서 체육 수업을 하고 계시더군요. 그런데 담임 선생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리 수술입니다. 준비물을 확인하고 교실로 가려는데 체육관 한쪽 끝에 담임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계시더군요. 대리 수술 참관입니다. 체육부장님의 말 그대로 함께 있기는 한 것입니다.
"현수막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과학 선생님이 묻습니다.
우리 반은 복도 맨 끝이라 교실 옆에 큰 벽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런저런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전체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나 책에서 봤던 인상적인 문장을 겁니다. 과학 선생님께서는 그게 궁금했던 것입니다.
"모든 학교에는 플로터가 있어요. 마침 우리 반 바로 옆에 공간이 있기도 해서 그냥 해본 거예요. 특별한 동기나 의도는 없습니다. 그냥 해보고 싶어서요. 요즘에는 그런 제약이 없어요. 선생님께서도 현장에 가시면 선생님이 하고 싶은 걸 하시면 됩니다. 그러려면 어느 정도 학교 업무에 익숙해지고, 학생들을 나의 테두리에 둘 수 있어야 할 거예요. 그렇게 되면 마음의 여유가 생길 겁니다. 그때 보일 거예요. 이것도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이런 생각이 들 겁니다."
과학 선생님과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했습니다. 그 선생님께 제가 어떤 도움이 됐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학기 시작 후 서로 길들여진 우리 반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머리로만 생각했던 것들을 실제로 상대방을 놓고 말해보니 더 분명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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