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실 이야기

학교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주수영 2024. 5. 31. 08:19
반응형

학교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것과 그렇지 않았던 것은 뭐가 있었을까? 그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004년 처음 학교에 왔을 때 여느 사회 초년생과 같이 학교라는 시스템에 적응하는 데 시간과 힘을 쏟았습니다. 배우는 학교에서 직장인 학교로 들어왔기에 아직 대학생 물이 덜 빠졌던 시기입니다. 젊음을 무기로 달려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가 새로웠습니다. 옆반 선배들은 척척 그리고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고 제 시간이 되면 퇴근을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것들이 몇 년 동안 소화했던 일이라 예측된 것이었고, 준비도 할 수 있었겠지요. 마치 숙련된 요리사가 미리 필요한 요리 재료를 다듬는 것처럼. 해를 넘기면서 저도 그것이 몸에 들어왔습니다. '이맘때는 슬슬 이걸 준비해야지.'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을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됐습니다. 힘을 빼야 할 지점을 알게 됩니다. 나이가 들며 좋은 점은 일이 손에 익게 되는 것입니다. 정신없이 첫 번째 학교에서 3년을 보내고 두 번째 학교에서 4년을 보냈습니다. 베테랑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학교가 일년살이를 어떻게 하는지 감을 잡아갔습니다.

 

세 번째 학교에서 만났던 교장 선생님은 자신만의 교육 슬로건이 있었습니다. 교장 부임 첫날 전 교실을 돌며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그동안 만났던 관리자와는 달랐습니다. 우리 교실 차례가 왔을 때 그 슬로건을 얘기했습니다.

"삼사를 생활화하자. 삼사는 인사, 감사, 봉사다. "

그 후 학교 행사를 기획할 때도 삼사를 중심에 놓았습니다. 그 당시 학생들 인성교육을 맡고 있던 저는 함께 이야기할 기회가 잦았습니다. 어느 날 저한테 이런 주문을 했습니다. 

"주부장(학교에는 일반교사와 부장교사가 있고, 저는 그때 처음 부장교사를 맡았습니다)~ 삼사 관련된 현수막을 학교에 붙였으면 좋겠는데. 잠깐 이리 와봐요."

그러면서 교장실 창문으로 가서 학교 정문을 들어올 때 바로 보이는 외벽을 가리켰습니다.

"저기에 붙이면 잘 보일 것 같아."

"그럼 들어갈 문구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래. 그럼 적당한 글을 같이 생각해 봅시다."

학교에서 관리자들은 자신의 교육 철학을 이런 식으로 표출합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저 같은 실무자들이 일에 착수합니다. 인사, 감사, 봉사와 관련된 글귀를 생각했습니다. 담임을 맡고 있는 저는 이런 일을 하루빨리 처리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우리 반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즈음 인성교육 실천주간이 있었습니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그 주간에는 인성교육과 관련된 교육과 행사를 합니다. 문득 '현수막 문구 공모전을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학년을 대상으로 하면 뭔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해서 삼사 현수막 공모전을 했고, 6학년 여학생이 괜찮은 글을 써줬습니다. 교장 선생님도 만족했습니다. 이렇게 걸었습니다.

 

우리 교실 이야기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겁지겁 하루하루를 버텼던 첫 학교가 생각났습니다. 경력에  새로운 생각이 더해이면 그동안 해왔던 일을 다르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사에 대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학생들이나 동료 선생님들의 경우 인사에 인색한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학교로 온 여자 선생님과 있었던 일입니다. 수줍음이 많으신지 인사를 잘 나누지 못하시더군요. 저는 학교에서 동료 선생님 또는 어른으로 보이는 누구를 만나면 "안녕하세요."라고 합니다. 그렇게 우리 옆반 신규 선생님께도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안녕하세요."라고 하는 저에게 "예." 하시더군요. '아.. 내가 인사를 드리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다른 선생님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이 선생님도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막 학교에 온 여자 선생님입니다. '신규, 여자 선생님은 인사에 인색하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이고 우연의 일치입니다. 우리 반 옆에서 급식을 먹는 다른 학년 담임 선생님이셨습니다. 여자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이 급식을 받아오는 식판을 서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도 바로 옆이라 선생님을 보았고, 인사를 했습니다. 고개를 숙이시더군요. 그런데 팔짱을 끼고 있었습니다. 저는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고, 선생님께서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이는데 '이게 뭐지?' 싶었습니다. 저는 40대 중반, 여자 선생님은 20대 중반. 나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나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것 때문에 찜찜한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학교에 막 들어온 선생님들께 해주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그럴 권한은 없으니 그냥 인사를 확실하게 할 뿐이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목소리를 내고 싶어 우리 반 복도에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 교실 이야기

 

그 후 다른 학교로 옮겼습니다. 휴직을 2년 정도하고 온 학교였습니다. 2년의 공백이 긴장감을 불어넣더군요. 새 학교는 그 학교의 분위기가 따로 있습니다. 새로 온 첫 해는 못 마땅한 것이 있어도 웬만하면 얘기를 잘 안 하고 여기의 룰을 익혀야 합니다. 가끔 새 학교로 온 선생님들이 "이 학교는 왜 이걸 이렇게 해요?"라고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나름 사정이 있는 것을 쉽게 치부하는 것 같아 별로 좋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순간의 느낌으로 단순히 툭툭 던지는 그런 류의 말들은 '이건 하기 싫은데.'라고 들립니다. 새 학교에서 1년을 보내고 두 번째 해를 맞았습니다. 학교폭력예방 업무를 맡았습니다. 인성교육 실천 주간과 마찬가지로 학교폭력예방교육을 해야 할 시기입니다. 전에 했던 현수막 공모전이 생각났습니다. 그때는 인사, 감사, 봉사가 주제였다면 이번에는 학교폭력예방이 그것입니다.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 얘기를 했습니다.

"학교폭력예방 현수막 공모전을 해보려고 합니다. "

"괜찮네요. 그럼 그걸 정문에 걸 건가요?"

"예. 최우수로 선정된 학생의 작품을 제작하려고요."

"최우수? 그럼 상장을 주는 건가요?"

"예. 상장도 줄 생각입니다."

"음... 그건 선생님들과 얘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은데. 우리 학교는 상장을 주지 않은지가 오래됐어요. 나는 학생들에게 상장을 주고 싶은데 몇몇 선생님들은 반대하거든요."

"왜? 상장 주는 걸 반대할까요?"

"상을 못 받는 학생들이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해서 상장을 안 준지 오래됐어요. 일단 다음 주 전체 회의가 있으니 그때 이 얘기를 같이 해보도록 합시다."

후딱후딱 일이 진행되면 좋습니다. 탁 트인 고속도로를 생각한 속도에 맞춰 달리면 생각한 시간에 도착합니다. 이 경우는 반대입니다.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인한 정체라고 할까? 담임을 맡고 있는 선생님들은 이런 일을 신속하게 처리해야 우리 반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정체가 생긴 것입니다. 전체 회의 시간이 왔습니다. 전체 선생님들 앞에서 현수막 공모전과 상장에 대한 설명을 했습니다. 한 선생님이 먼저 발언했습니다.

"정문에 현수막을 걸면 그 한 명의 학생것만 너무 도드라지지 않을까요? 상처받는 학생들이 있을 것 같아요."

"한 현수막에 세 개 정도의 작품을 걸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럼 그 세 명만 기분 좋고 나머지 학생들은 어떻게요?"

다른 선생님이 손을 듭니다.

"상장을 주는 건 반대입니다. 상을 받지 않는 학생들은 상처받아요."

"모든 대회나 공모전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요? 입상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으니 이걸 하지 말아야 할까요?"

"적어도 우리 초등학교에서는 그런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은 안 했으면 합니다."

"맞아요. 저도 반대입니다."

사회를 보신 선생님이 나섰습니다. 

여기서 합의를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투표로 정하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결과는 압도적 반대. 교장 선생님의 예측은 정확했습니다. 

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상장도 정문 현수막도 없이 그냥 행사만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약간의 오기가 발동했습니다. 정문 현수막은 안되지만 학교 적당한 곳에 종이 현수막을 제작해서 걸었습니다. 급식실로 이동할 때 전교생이 지나치는 곳입니다. 

우리 교실 이야기

 

우리 교실 이야기

 

옛날 학교에는 불합리한 것이 참 많았습니다. 이른바 갑질이죠. 관리자들은 학교를 마음껏 휘두르며 자신의 힘을 과시했습니다. 명절 때 관리자들에게 선물을 건네고 인사를 목적으로 한 청탁이 있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지금 학교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민주적 의사 결정이라는 이유로 많은 것들이 사라진 것도 사실입니다.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과 합의를 거치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모든 걸 '하지 말자.'라는 식으로 가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할 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기고 마음먹었습니다. 학교에서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교실은 다릅니다. 담임이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정문 현수막과 상장이 무산된 우리 학교에서는 학급 선거를 하지 않았습니다. 당선되지 않는 학생들은 상처를 받는다는 이유에서였죠. 저는 투표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학급 자체 내 선거를 치렀고 매달 대표를 뽑았습니다. 임명장은 생략하고 매달 말일 감사장을 줬습니다. 학급 내  행사를 통해 상장도 줬습니다. 상장이 금지된 터라 교무실에는 상장 종이가 넘쳤습니다.

우리 교실 이야기

 

 

우리 교실 이야기

 

학교에서 하는 일들은 픽스돼 있습니다. 3월을 시작으로 다음 해 2월에 마무리되는 일정에 적응하고 나면 언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여유가 생깁니다. 그걸 다른 곳에 쏟으면 담임은 다양한 학급 경영을 할 수 있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면 다른 곳을 봐야 합니다. 같은 교실에서 매년 같은 일만 하지 않는 것. 꾸준하되 똑같지 않는 것. 학교에 그런 분위기가 확산됐으면 합니다. 

 

'우리 교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편했던 교실  (0) 2024.06.17
학교에서 승진을 한다는 것  (2) 2024.06.10
가정의 달 5월. 그리고 스승의 날.  (0) 2024.05.27
학생들을 대할 때  (0) 2024.05.08
학생들과 그 가족들.  (1) 2024.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