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는 여러 날이 있습니다.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그리고 스승의 날. 요즘은 근로자의 날 쉬는 학교가 있습니다. 몇 해전에는 스승의 날에도 학교 문을 닫자고 하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청탁금지법이 시행될 무렵 작은 선물도 금지하면서 스승의 날 서로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그렇게 하자는 것이었죠. 제가 2009년에서 2012년 사이 근무했던 공항 근처에 위치한 학교에서는 5월 1일 운동회를 열었습니다. 학부모들이 학교에 많이 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죠. 학부모와 교사의 계주 경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오랜만에 뛰는 어른들이지만 자식들 앞에서 그리고 학생들 앞에서 열정이 앞서다 보니 넘어지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운동회를 치르고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자리를 치우고 나면 뿌듯했습니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함께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무엇보다 큰일을 치른 것 같았습니다. 요즘은 어린이날 학생들의 선물을 준비하는 선생님들도 많습니다. 학급 자체의 예산이 있다 보니 그걸로 이것저것 준비를 하십니다. 어버이날에는 학생들에게 부모님을 위해 드릴 편지나 꽃을 만드는 활동도 넣습니다. 5월은 확실히 가정의 달입니다. 그리고 스승의 날이 있습니다.
2022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오래전 함께 근무했던 교감 선생님께서 교직원 전용 메신저로 쪽지가 왔습니다. 김00 교감 선생님(지금은 교장 선생님). 수업을 마치고 전화를 해달라고 하시더군요. 굉장히 오랜만에 온 연락입니다. 게다가 그분은 저랑 같이 근무는 했지만 시간을 두고 주기적으로 만나는 개인적인 사이는 아닙니다. 수업을 마치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 통화는 생생히 기억나네요.
"선생님 혹시 우리 학교-지금 교감 선생님 계시는 학교입니다-에 근무했었어요?"
"예. 맞습니다."
"그게 언제지?"
"2009년부터니까... 2012년까지 있었습니다."
"그럼 혹시 2011년에 3학년 학생 중에서 이현0이라는 학생 기억나?"
잠시 기억을 더듬어 봤습니다. 이.. 현.. 0..
그 당시 전 3학년을 맡고 있었습니다. 3학년을 처음 맡았고, 고학년과 주로 생활하다 상대적으로 어린 학생들을 만난 저는 '3학년은 어리지만 더 순수하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교육적인 의미를 섞어 표현하자면 고학년보다 내 말과 행동이 더 큰 영향을 주는구나라고 느꼈습니다.
그때 근무하던 00초등학교는 공항 근처에 있는 학교였습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의 직업이 공항 관련 직종이 많았습니다. 파일럿, 승무원, 공항 경찰, 공항 식당, 공항 청소 등등. 아무튼 공항에는 이렇게 많은 직업이 필요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공항에는 없는 게 없죠.
이.. 현.. 0.. 기억이 납니다. 2011년 3학년 학생입니다. 아빠는 비행기 정비사였습니다. 그런데 아빠가 미국으로 파견을 가게 되어 따라간다고 했습니다. 우리 반에서 저랑 두 달 정도 함께 생활했습니다. 당시는 걱정을 했습니다. '이 어린아이가 말도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 잘 생활할 수 있을까? 내가 지금 당장 미국에 가도 힘들 것 같은데.' 엄마는 미국으로 가기 몇 주 전 저를 찾아와서 그리 전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지고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2011년 3학년 열한 살 학생이 11년이 지난 2022년 스물두 살이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오래 생활을 한 현0이는 방학을 맞아 한국을 찾았습니다. 자기가 살던 동네를 살펴보고 싶어 그곳을 갑니다. 어린 시절 살던 집과 동네를 훑어보던 중 옛날에 다녔던 초등학교가 보입니다. 무작정 거기를 들어갑니다. 그리고 교무실로 갔습니다. 김00 교감 선생님을 만나 혹시 아직도 제가 거기에 있냐고 물어봅니다. 당연히 없습니다. 교사는 3-4년 주기로 학교를 옮기는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그 교감 선생님은 제 이름을 압니다. 교감 선생님께서는 학생의 번호를 받습니다. 그리고 저한테 교사용 메신저로 연락을 한 것입니다. 교감 선생님께서는 학생의 번호를 저한테 알려줬습니다. 한국에 언제까지 머문다고 하니 의사가 있다면 연락을 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번호로 문자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연락을 했습니다.
2022년 그렇게 연락이 닿아 현0이와 만났습니다. 미국으로 간 현0이는 처음에는 언어 때문에 힘들었지만 잘 극복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는 우수한 성적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버클리대 생리학을 전공으로 입학했습니다. 나중에는 의사가 되겠다며 '선생님~ 저 잘했지요.'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얘기를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저는 또 언제 볼지 모르는 현0이에게 책에 짧은 편지를 써 건넸습니다.
그 후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2024년 올해 5월 한국의 교환학생으로 오게 된 현0이를 다시 만났습니다. 현0이와 이런저런 대화를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3학년 때 미국으로 가기 전 저를 위해 해준 것이 있어요."
"그게 뭐니? 난 특별히 해준 게 없는 것 같은데."
"제가 미국으로 가기 전 선생님께서 제가 원하는 걸 한 시간 할 수 있게 해 주셨어요."
"그때 뭘 했는데?"
"피구요. 저한테 물으셨죠. 제가 좋아하는 게 뭐냐고? 하고 싶은 게 있냐고? 친구들 등살에 밀려 그렇게 얘기했지만 저도 좋았어요. 그게 기억나요."
그때도 전 저학년 학생들은 순수하구나. 교사의 말과 행동이 더 깊게 파고드는구나라는 생각은 했었습니다. 그런데 현0이의 얘기를 듣고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조심해야겠구나. 내가 한 말과 행동이 이런 거라면 좋겠지만 그 반대라면 어쩌나 이렇게 오래 갖고 있을 텐데. 2011년 3학년 학생이 2024년에 한 얘기를 들으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 반 학생들이 스승의 날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전 제가 잘 생겼다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지만-아주 가끔은 그렇게 착각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떤 작가는 그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하더군요. 교사로서 소소한 기쁨은 이런 것입니다. 5월은 여러 날이 있습니다. 거기에 좋은 일도 딸려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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