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실 이야기

학생들과 그 가족들.

주수영 2024. 5. 3. 08:29
반응형

학생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합니다. 그들의 아빠, 엄마, 형제자매들에 대해 들으며 학생들을 더 알아갈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다양한 얘기를 들려줬고, 그중 제 기억에 남는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지만 마음 편히 있는 곳은 뭐니 뭐니 해도 집입니다. 과연 그들은 집에서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을까? 부모들이 자식들의 학교 생활을 궁금해하는 것처럼, 저는 학생들의 가정생활이 궁금했습니다. 가족들과 관련된 몇 가지 제목을 주고 글을 쓰면, 제가 답글을 쓰는 식으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10년 전 학생이 쓴 글입니다. 그때는 한 학기에 두 번 중간, 기말 시험을 봤습니다.

 

2014.4.2

과학시험을 망쳤어요. 65점. 85점... 처음에는 엄마가 혼낼까 봐, 미래가 불안해서, 눈앞이 캄캄해서, 초조해져서, 심리 상태가 매우 불안정해서 시험지를 숨기려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생각했어요. '내가 5학년이나 돼서 자신감 하나 없고, 겁쟁이일 줄이야' 그래서 엄마께 사실대로 말씀드렸더니, "00아~ 엄마는 거짓말하고, 자신에게 정적하지 못한 00이는 싫고 솔직하게, 정직하게 말하는 00이가 멋있고 좋아."라고 말씀해 주시고, 

"노력한 만큼 결과가 안 나와도 다음에 더 잘 보면 되니깐 너무 속상해하지 마"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오늘은 엄마께 정말로 감동 먹었고, 지금보다 몇 배 아니 몇 십배, 몇만 배는 더 분발하여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리고 오늘은 왠지 엄마가 멋있어 보였어요.

 

학생들과 그 가족들

이 학생은 지금 어떻게 성장했을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날의 경험은 긍정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부모님들 못지않게 학생들은 시험 결과에 민감합니다. 저는 학교에서 성적 발표가 났을 때 "오늘 엄마한테 죽었다."라는 말을 듣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안타깝습니다. '그거 그리 대단한 게 아닌데.'좋은 결과로 성취감을 얻거나 내 노력이 보상받았다는 기분을 느끼면 좋습니다. 하지만 그 점수가 그동안 내가 해온 과정을 고스란히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학생들과 그 가족들

 

학생들과 그 가족들

 

학생들은 저마다 각자의 가정이 있었고, 때로 상처도 있었습니다. 그리 좋은 얘기가 아니라 다 할 수는 없지만 엄마에게 상처가 있는 학생과 어느 날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그 이후 답글은 없었습니다. 아무쪼록 관계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면서 글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학생들과 그 가족들
학생들과 그 가족들

 

동생이 있는 학생들은 이런 갈등을 겪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죠. 

학생들과 그 가족들

지금도 내 필통에 낙서도 하고 계속 놀아다라고 해서 짜증 나고 또 짜증 난다. 지금도 엄마한테 또 혼나고 있다. 동생 때문에 엄마한테 맨날 혼나고 있다. 안 혼나는 적이 없다. 그리고 동생한테 관심, 사랑, 등등을 빼앗겼다. 엄마는 동생에게만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 같아서 질투가 나고 너무너무 서운하다. 억울하다. ~~~~~~~~~~~중략~~~~~~~~~남동생이 있건, 여동생이 있건, 형제, 자매, 형, 누나, 오빠, 언니 다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거다. 특히 양보해야 할 때가 난 더 억울하다.

학생들과 그 가족들

 

저는 학생들이 부모님과 대화를 많이 나누기를 바랍니다. 부모님과 긍정적인 대화를 많이 나눈 학생들은 교실에서의 모습도 다릅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기 위해 문제를 내고 그걸 부모님께 여쭤보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퀴즈를 알아오는 학생에게는 칭찬을 해줍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오늘도 선생님께서 퀴즈를 내주셨습니다. 갯벌을 메꾸는 사업이 무슨 사업인지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엄마는 단박에 대답했습니다. 간척사업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간척사업이라고 계속 암기해도 외워지지 않아 세 번이나 다시 물어봤습니다. 그때도 바로 1초 만에 다시 대답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정말 이런 것에서부터 어른과 아이의 차이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과 그 가족들

 

학생들과 그 가족들

 

학생들과 그 가족들

 

"행복한 가정은 대부분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자의 이유로 불행하다."

안나카레리나의 소설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입니다. 이것은 안나카레리나 법칙이라고까지 불립니다. 학생들의 가정에 대한 글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정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학생들은 그것이 부모님과의 대화, 저녁 식사, 산책 등 사소한 일상 속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반대인 가정은 그 이유가 제각각이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는 말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일상 속에 숨겨져 있을지 모를 행복을 찾아봐야겠습니다.

'우리 교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정의 달 5월. 그리고 스승의 날.  (0) 2024.05.27
학생들을 대할 때  (0) 2024.05.08
교사의 말  (1) 2024.05.01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  (0) 2024.04.29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1) 2024.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