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얼마 전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교권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었습니다. 저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선생님은 대단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실에는 폭력이 난무했죠. 시간이 지나며 학생인권이 신장되었고, 어찌 된 일인지 그것과 반대로 교권추락이 이어졌습니다. 학생인권과 교권은 반대 방향으로 가버린 듯합니다. 그리고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는 점점 멀어진 것 같습니다.
제가 겪은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30여 년 전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일입니다. 3월 첫 체육수업시간이었습니다. 첫 수업이라 체육 수업이 교실에서 진행됐습니다. 000 선생님-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만 밝히지 않겠습니다- 무섭게 분위기를 잡은 체육 선생님은 단정해 보이게 잠바 자크를 잠그라고 했습니다. 키가 작아 맨 앞자리에 앉은 저는 자크를 잠그려는 순간 자크가 고장 나서 잠궈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잠시 후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이 학생처럼 아까 분명히 얘기를 했는데 말을 듣지 않는 학생은 앞으로 혼날 겁니다."라고 말하며 저의 빰을 때렸습니다. 그때 전 "자크가 고장 나서요."라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고장 났으면 고쳐야지." 하며 빰을 한 대 더 때렸습니다. 억울하고 분했지만 다른 말을 할 수 없었죠. 교사로 발령이 난 후 교사전용 메신저 망에 접속해 보니 그 선생님은 아직도 현직에 있었습니다. 제가 겪어본 선생님들 중에는 좋은 선생님들이 많았지만 그런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학부모들의 태도도 바뀌었습니다. 옛날처럼 우리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불합리한 대우가 있다면 참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교사들은 학부모들과 최대한 접하지 않으려는 경향도 보입니다. 과거에는 학기 시작과 함께 선생님의 핸드폰 번호를 알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 교사들도 많습니다. 핸드폰 두 개를 쓰는 선생님들도 있더군요.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멀어진 듯합니다.
몇 해 전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우리 반 학생이 글쓰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10.13일 목요일
요즘 너무 힘들다. 학교, 학원, 집안일, 숙제, 학원 숙제....다크서클도 있다. 친구들 스트레스도 가끔 있다. 너무 졸리다. 합창부도 하기 싫다. 안 한다고 말하면 잔소리 바이올린, 피아노 안 한다고 했을 때 “너는 왜? 맨날 한다고 하고, 왜? 그만하겠다고 해?” 그때마다 구석에서 운다. 물론..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라고 하시겠지...
그 학생의 얘기를 듣고 저도 답글을 썼습니다. 마음고생이 심한 것 같아 다른 학생들에게 쓸 시간을 줄이고 길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00이가 학교에서도 종종 피곤해 보였구나.
얘기해 줘서 고마워. 00아. 힘들 때는
이렇게 힘들다고 얘기를 해야 해.
힘든 걸 참으면 몸과 마음이 병들어
부모님께서도 솔직한 00이 얘기를 들어주실 거야.
친구들 스트레스는 선생님한테 자세히 얘기해 주렴.
그럼 선생님이 못 하게 할게.
그리고, 지금 00이가 하고 있는 게
너무 많으면 좀 줄여도 괜찮을 것 같다.
이건 부모님께 말씀드리렴.
00이를 세상에서 제일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부모님이셔.
엄마, 아빠를 믿고 솔직한 00이 마음을 말씀드리렴.
이렇게 쓰고 난 후 문제가 잘 해결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부모님께 연락을 해야 할 것 같아 전화를 했습니다. 00이의 글을 봤냐고 물었습니다. 엄마는 못 봤다고 했습니다. 대략적인 설명을 하고 00이와 대화를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00이가 쓴 글과 내가 쓴 댓글을 사진으로 보내고 보호자와 이렇게 얘기 나눴습니다.
열흘이 지난 후 그 학생의 글쓰기에 이렇게 쓰여있었습니다.
10.23일
제목: 이제 미술만!
이제 학원에서 “미술”만 한다. 근데... 학습지도 가끔(?) 할 거다. 말하니까 엄마가 흔쾌히 허락을... 처음엔 두려웠다. 내가 이래도 될까? 그러다 말하니 속이 아주 시원하다. 미리 말할 걸 그랬다. 엄마도 착한데...
"엄마도 착한데"라는 말이 참 예뻤습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한 것 같았습니다. 그 일은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우리는 학생을 중심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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