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교사의 말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교사들이 한 말은 학생들에게 어떻게 남을까요? 그리고 그것은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살다 보면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 한마디가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일도 있습니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오해의 골이 깊어지기도 하고, 이해의 폭이 넓어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 말의 힘은 시간이 오래 지난 후에 드러나기도 합니다. 제 경험을 보면.
교사라는 직업이 등장하는 영화나 소설 속 인물에서 저는 친밀감을 느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스푸트니크의 연인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초등교사입니다. 그 소설에서 그의 직업이 큰 변수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왠지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이병헌은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등장합니다. 학생들과 첫 만남 시간. 이병헌은 칠판 가로 한 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분필로 선을 긋습니다. 그리고는
"이게 지구다.'라는 말을 던집니다. 학생들은 의아해하죠. 잠시 시간을 둔 후, 우리가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될 확률에 대해 말합니다. 지역과 학교 이름은 정확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말이었습니다.
"이 지구 한가운데 바늘을 꽂는다. 그리고 하늘에서 실을 떨어뜨려. 그 실은 나풀나풀 땅으로 내려오지. 그 실이 이 바늘에 꽂힐 확률. 그 말도 안 되는 확률로 우리가 지금 만난 거다. 지구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그 많은 도시 가운데에서도 일산. 거기다 동구. 그리고 동구의 그 많은 학교 중에도 일산 중앙고. 그것도 모자라 하필이면 1학년 9반에서 우리가 만난 거야. 기적 같은 우연이지."
그 대사는 저에게 깊게 남았습니다. 학생들을 처음 만나는 3월에는 늘 이 바늘과 실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도 우리 반 학급 안내판에는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학생들은 가끔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이 학생은 수줍음이 많은 5학년 여학생이었습니다. 자기 할 일을 완벽하게 해냅니다. '5학년이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아직까지 선생님한테 혼난 적이 한 번도 없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실수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 같았습니다. 어떤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다른 학생 글쓰기 댓글은 잠시 미루고 제 생각을 썼습니다.
마음속에 남은 실수에 대한 앙금을 씻어 주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는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낫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제 글에 대한 답장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남은 5학년을 보내고 헤어졌습니다. 과연 그 학생에게 저의 말은 어떻게 남았을까 지금으로선 알 수 없습니다.
5월 15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이 날이 되면 몇몇 학생들에게 연락을 받곤 합니다. 2019년 스승의 날. 2009년 당시 6학년 학생에게 이렇게 연락이 왔습니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에는 분명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힘은 올바른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그 말을 이렇게 바꿔봅니다.
'교사의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지금은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학생들에게 하는 말도 그들에게 어떻게 전해지고 남을지 모를 일입니다. 선한 영향을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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