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승진을 한다는 것은 교사에게 어떤 의미인지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학교에서 교사는 일반적으로 세 부류로 불립니다. 교사, 부장교사, 관리자(교장, 교감). 학교에서 승진을 한다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교사의 진로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제가 처음 학교에 왔을 때 남자 선배들은 대부분이 승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려면 부장교사를 맡아야 합니다. 그들은 일단 부장교사의 티켓을 따기 위해 교감, 교장에게 순종적이었습니다. 비합리적인 일들이 횡행했습니다. 관리자들을 위해 술자리를 마련하고, 그들에게 술을 따르고, 그 티켓을 손에 쥐기 위해 열심히였습니다.
첫 학교는 승진을 위해 유리한 학교였습니다. 우리 지역은 승진을 위해 가야할 험한 학교가 있었습니다. 이른바 기피하는 학교입니다. 교통이 불편하거나, 삶의 인프라 충분치 않은 곳이죠. 그곳에 가면 이른바 승진을 위한 마일리지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학교에 첫 번째 학교로 신규 발령을 받은 것입니다. 승진을 위한 선배들이 우글거리고 있었습니다. 저도 자연스럽게 승진의 절차를 배우게 됐고, 그것들은 제 몸속에 서서히 스며들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학교에서 두 번째 학교로 옮길 때도 승진 마일리지를 쌓을 수 있는 학교로 가게 됐습니다. 보통 학교는 여성의 비율이 높습니다. 그런데 승진을 준비하는 여교사보다 남교사가 많아 두 번째 학교는 남성의 비율이 꽤나 높았습니다. 그리고 거기는 승진 마일리지가 더 높은 학교였습니다. 두 번째 학교는 여교사들도 승진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것을 위한 첫 번째 관문인 부장교사를 손에 넣기 위해 여러 가지 계산을 했습니다. 아직 경력이 짧은 저는 부장교사는 지원도 하지 못했지만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조용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세번째 학교에서 처음으로 부장교사라는 것을 했습니다. 부장교사를 하니 승진 점수를 따는 기회가 더 많아졌습니다. '이래서 부장교사를 하려고 하는구나.'라는 걸 그때 체감했습니다. 승진 점수 항목을 취득하기가 수월해졌고, 저의 승진 점수도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그 세 번째 학교에서 저의 경력은 10년 정도였습니다.
승진을 준비하는 선배들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나이에 맞는 직위가 필요하다."
"평생 평교사로 있을거야?"
"지금이야 젊어서 애들이 좋아하지만, 나이 들면 애들도 싫어하고, 학부모도 싫어하고, 심지어 동료 교사들도 싫어해."
그러니 승진을 해야 한다. 였습니다.
일견 맞는 얘기처럼 들렸고, 저도 그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왠지 모를 공허함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찜찜함. 승진을 하려면 경력 20년이 돼야 합니다. 20년 동안 그 마일리지를 위해 달려야 합니다. 긴 마라톤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마라톤을 즐깁니다. 그런데 이 승진 마라톤에 실제 마라톤 결승선과 같은 뿌듯함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승진을 하려면 주말을 반납하고 승진 가산점 적립을 위해 할 일도 많습니다. 그때 제 두 아들은 아직 손이 많이 가는 나이였습니다. 저로서는 중대한 결심을 해야 했습니다. 승진을 할 것이냐? 접을 것이냐? 승진을 한다는 것도 나를 위한 것이지만 진정 나를 위한 길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승진 대신 육아휴직을 선택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남교사가 육아휴직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아내를 직장에 보내고 1년 동안 육아휴직을 하면서 학교를 떠났습니다. 그때의 일상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두 아들을 깨웁니다. 아내는 출근 준비를 합니다. 첫째는 어린이 집에 보내야 하고, 둘째는 집에서 돌봐야 합니다. 아침을 먹이고, 씻깁니다. 첫째는 혼자 걸을 수 있어서 괜찮지만, 둘째는 애기띠를 해서 안아야 합니다. 둘째를 안고 첫째를 데리고 나가 자동차에 탑니다. 둘째를 카시트에 고정시키고, 첫째는 뒷자리 앉힌 후 운전을 해 어린이 집으로 갑니다. 첫째를 등원시키고, 둘째와 운동장에서 잠시 산책합니다. 말이 산책이지 둘째가 걸음마 단계라 걷는 연습을 시키는 것입니다. 뒤에서 따라다니며 다치지 않도록 유심히 살핍니다. 그리고 다시 둘째를 데리고 집으로 옵니다. 둘째는 매우 규칙적이었습니다. 밥을 먹고 낮잠을 자는 시간이 일정했습니다. 마치 학교에서 정해진 시각에 종이 울리듯이. 낮잠 시간은 달콤했습니다. 대학 때 공강 시간과는 비교가 안될 자유입니다. 다른 곳에 갈 수는 없지만 조용히 집에서 침묵의 자유를 누립니다. 한 시간 삼 십 분이 지나면 어김없이 일어나 밥을 먹습니다. 차리고, 먹이고, 치우고, 등하원. 그것의 반복입니다. 어찌 보면 지루한 일상입니다. 이렇게 매여 있는 것이 우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저한테는 그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학교와 승진이라는 굴레에 더 단단히 묶여있었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얘기하면 승진 마일리지에. 특별히 의미를 갖지도 못하는 그것에. 그때 '내가 승진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분위기에 휩쓸렸구나.'라는 걸 알았습니다. 공허함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그 후에도 육아휴직을 두 번 더 했습니다. 학교를 떠나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유치원을 보내고, 요리를 하는 것이 저에게는 유쾌하지는 않지만 지겹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약간의 재미도 있었습니다. 당시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이 유행했습니다. 육아와 집안일에 지친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그로 인한 따분함이 병이 되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스토리를 김지영을 상담한 의사의 관점에서 서술한 것입니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공감이 가지는 않더군요.-마지막 문장은 무척 인상 깊어 또렷이 남아있지만- 하긴 비할 바가 아닙니다. 육아휴직 3년 한 것과 직장을 버리고 아이만 바라봐야 하는 여자들의 입장을 제가 다 알기는 어렵겠지요. 어쨌든 저의 육아와 집안일은 매일 같은 일의 반복이었지만 저에게 나름 의미가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10년 동안 남의 아이를 돌보고 가르치다가 이제 내 아이를 내가 돌볼 때. 마치 건축가가 직업으로 남의 집만 짓다 이제 자기 집을 스스로 짓는 기분이랄까요. 그렇게 저의 포지션은 정해진 것입니다. 이제 그 자리에서 저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니 홀가분하더군요. 학교에서 가정에서.
승진만 기준으로 보자면 학교에는 네 부류의 교사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승진만 생각하는 교사입니다. 요즘에는 이런 분들이 많지 않지만 제가 처음 학교에 온 2000년대 초반에는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기준은 하나. 그것에 승진 가산점이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심플합니다. 점수가 있으면 하고, 아니면 안 합니다. 거기에는 어떤 여지도 파고들 수 없습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몰리고 때로 갈등(점잖게 표현하자면)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승진도 하는 교사입니다. 점수에 관심이 있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마치 일과 가정에 충실한 부모의 모습이랄까요. 승진 마일리지가 없는 일이어도 기꺼이 합니다. 학생이 중심에 있습니다. 때로 관리자들과 부딪힐 때도 있습니다. 승진을 하지만 그것이 언제나 1번은 아닙니다. 후배들도 동료들도 이런 분들을 선호합니다. 가끔은 승진만 준비하는 교사들의 따끔한 눈총을 받기도 합니다. '너의 정체를 밝혀라.'라는 듯한.
세 번째는 승진만 안 하는 교사입니다. 써놓고 보니 두 번째 교사와 비슷해 보입니다. 실제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 분들은 승진 점수만 생각하지 않을 뿐 여러 가지를 열심히 하는 부류입니다. 학교 일에 협조적이고, 필요하다면 부장교사를 맡기도 합니다. 자신의 역할이 필요하다면 마다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에게 관심도 많습니다. 노하우가 쌓여 능숙하게 학교 일을 처리하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배우는 교사입니다. 승진 가산점에 관심이 없을 뿐입니다.
네 번째는 승진도 생각하지 않는 교사입니다. 이 분들은 그냥 공무원입니다.-공무원을 폄훼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퇴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적당히 일하고, 때 되면 나오는 월급을 받는 공무원. 교실에 있지만, 학교에 없는 듯한 교사. 최대한 일을 적게 하는 게 목표인 듯 보입니다. 마치 학교에 온 손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요즘은 학교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승진을 하려는 교사들이 많이 줄었습니다. 저처럼 거기서 의미를 찾지 못해서 일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뭔가 전세가 바뀐 것은 사실입니다. 작가 유시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나요?라는 질문보다 내가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를 고민해봐야 한다'
그렇게 승진을 접고 교실을 보니 많은 것들이 보였습니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학생들의 글이 보였고, 쉽게 가르칠 수 있는 방법들이 보였습니다. 내가 준비한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들의 진지한 눈이 보였습니다. 거기에는 승진 마일리지와는 다른 수치화할 수 없는 희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처음 학교에 왔을 때 맛본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제 인생에 의미를 불어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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