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얘기는 어디까지 믿고 받아줘야 할까? 학생들이 상반된 주장을 할 때가 있다. 그리고 학교, 교실에 대해 자기 의견을 얘기하기도 한다. 이런 말을 어디까지 믿고, 어디까지 받아줘야 할까? 그것에 대해 되새겨볼 경험이 있었다. 3월 학기가 시작하기 전 2월에는 같은 학년을 배정받은 선생님들이 모여 1년 동안 우리 반이 될 학생들을 뽑는다. 봉투에는 5-가, 5-나 이런 식으로 쓰여있다. 작년 4학년 학생들에게 통지표에는 자신의 반을 5-가, 5-나 이런 식으로 미리 안내했다. 그렇게 가분류된 반을 선생님들이 뽑는 것이다. 학년의 대표인 학년부장이 먼저 말했다.
"우리 학년에 생활지도가 특히 필요한 학생은 00이와 00이가 있습니다. 생활지도가 많이 필요하다고 해요. 어느 분이 맡아주실까요?"
작년 4학년 교사들이 모여 반 배정을 할 때 생활지도가 필요한 학생들을 한 반에 몰리지 않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때로 '00 남자 담임 필요'라고 쓰여 있기도 하다. 그때 우리 5학년에 생활지도가 많이 필요한 학생은 두 명이었다. 김찬우, 이우정. 특히 찬우는 분노조절장애와 과잉행동장애가 있다고 했다. 제일 생활지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당시 5학년은 다섯 반이었고, 나만 남자였다. 여자 학년부장은 나에게 부탁했다.
"주수영 선생님. 찬우 선생님이 맡아주실 수 있을까요? 우정이는 제가 데리고 갈게요."
난 수락했고, 학년의 첫 단추가 끼워졌다. 이제 학기 시작. 교실에 가서 학생들을 맞을 준비를 하면 된다.
새 교실에 오면 먼저 청소를 한다. 창문을 양쪽으로 열어 맞바람이 통하게 한 후, 빗자루를 들고 교실 곳곳의 먼지를 쓸어 바닥으로 내린다. 이 작업이 끝나면 책걸상을 뒤로 쭉 밀고 청소기를 돌린다. 다시 책걸상을 앞으로 쭉 밀고 마저 청소기를 돌린다. 마치 묵은 때를 벗기듯 교실을 씻긴다. 그런 다음 학생 수에 맞게 책걸상을 재배치한다. 이 작업을 끝내고 나면 몸도 개학을 하는 것 같다. 컴퓨터를 켜고 바탕화면 폴더를 만든다. 난 보통 학급 관련 폴더와 학교 업무 관련 폴더 그리고 올해 가르칠 교재연구 관련 폴더를 만든다. 그리고 제일 먼저 생성하는 문서가 학생명단이다. 찬우가 보인다. 1년을 잘 지내야 할 텐데.
찬우는 스스로 분노조절장애가 있다고 말했다. 내가 보기에 그 정도로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되지 않으면 짜증을 내기는 했다. 목소리가 높아지고 행동이 커지고 또래에 학생들이 하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기는 했다. 다른 친구들도 찬우가 그럴 때면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자기 하던 일을 했다. '쟤 또 시작이네.'라는 듯. 찬우와 4년을 지냈기에 그러려니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평소에는 친구들과 곧잘 어울렸다.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짜증을 내는 것은 가끔 있는 일이었다. 선생님이 자기 얘기를 들어주지 않을 때는 책상 밑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난 제재를 하다가도 수업을 계속했다. 수업 시간 중 찬우에게만 에너지를 쏟을 수는 없었고, 무엇보다 다른 친구들이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또 찬우는 금세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쉽게 끓지만, 곧 가라앉는다. 그래도 찬우는 늘 신경 써야 하는 학생이기는 했다. 그렇게 지내면서 나도 우리 반 친구들도 찬우에 대해 좋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곧 끓어오를지 모른다. 찬우는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과 보드게임을 하고, 점심시간이면 여느 남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운동장으로 나가 축구를 했다. 이 점이 참 다행이었다. 친구들과 다툼이 있기는 하지만 어울린다는 것. 교사에게 어울리지 못하는 학생은 언제나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한다. 그런 학생들을 보면 어떻게든 연결해 주고 싶지만 이게 또 쉽지 않다. 관계라는 것은 억지로 엮을 수 없다. 찬우는 그게 됐기 때문에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때로 삐그덕 삐그덕 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1년이 마무리 돼 갔다. 찬우가 별다른 사건, 사고 없이 5학년을 마무리 짓는 것 같았다. 나도 나름 자부심을 느끼게 됐다. '그렇게 힘든 아이라고 했는데, 그래도 잘 지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일이 있기 전에는.
점심시간이었다. 평소처럼 찬우는 남자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교실로 왔다. 화가 잔뜩 나 끓고 있었다.
"흐... 흐.... 선생님. 쟤네들이 저만 차별해요." 찬우가 분노를 참지 못하며 말한다.
"왜? 그러니."
"저한테만 공을 못 잡게 해요."
"시간이 다 됐잖아. 점심시간 끝나가니까 이제 교실로 와야 하니까 그런 것 아니니?"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공을 잡게 하는데 저만 못 잡게 해요."
"누가 공을 못 잡게 했니?"
"전부 다요."
그때 축구를 한 학생들은 여섯 명 정도 있었다. 다들 한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이 다 돼서 들어가자고 한 거라고.
"찬우야. 이제 수업 시간이니까. 화장실 가서 세수하고 물 좀 마시고 자리에 앉자. 이따 수업 끝나고 다시 얘기하자."
"저만 못 하게 했다니까요. 아.... 진짜.... 내 말만 안 믿어."하고 소리를 질렀다.
"찬우야. 선생님이랑 좀 있다 얘기하자. 조금만 가라앉히고."
찬우는 씩씩대며 화장실에 갔고, 뜨거운 얼굴을 씻고 교실에 왔다. 천천히 식더니 다시 수업 시간 모드로 돌아왔다. 늘 그랬듯이. 수업이 끝날 때쯤, 찬우는 자기가 그렇게 한 것과 내가 말한 것을 모두 잊은 듯했다. 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축구를 한 남자 친구들 모두를 남겼다. 찬우는 차분하게 얘기했다.
"축구가 끝나고 공을 가지고 가야 하잖아요. 그래서 그걸 제가 가지고 간다고 했어요. 그런데 애들이 그걸 못하게 해요." 찬우가 말했다.
다른 친구들은 의아해한다. 모두가 그런 적 없다는 표정.
"네가 막 화를 냈잖아." 같이 있었던 선진이가 말한다.
"네가 공을 못 잡게 했잖아." 약간의 짜증 섞인 목소리로 찬우가 말한다.
"누구 말이 맞는 거니?" 나는 같이 있었던 다른 친구들에게 물었다.
"선진이 말이 맞아요. 우리는 시간이 돼서 교실로 들어가자고 했고, 그때 찬우가 막 짜증을 냈어요."
찬우는 좀 지친 듯 보였다. 집에 가고 싶은 것 같다. 더 이상 뭐라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난 이걸 확인하고 싶어졌다. 마침 나에게는 권한이 있다. 학교 건물 밖에는 안전과 방범을 목적으로 CCTV가 설치돼 있다. 당시 내가 맡은 업무가 그것이었다. 바탕화면 폴더에는 'CCTV 관련'이란 것도 있다. 학교폭력업무를 맡던 나는 그걸 설치하고 관리했다. 비밀번호를 알고 있어서 학교폭력사안이 있을 때면 사실 확인을 위해 열람하기도 했다.
"그래 일단 알았다. 이제 집으로 가자." 내가 말했다.
학생들을 집에 보낸 후 행정실로 갔다. 행정실 주무관님께 말하고 CCTV가 있는 당직실로 갔다. 비밀번호를 입력하 CCTV를 돌려보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이라 조금 돌리니 우리 반 학생들이 나왔다. 운동장 화면을 보니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리고 우리 반 친구들은 교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마치 심판의 종료 휘슬을 들은 것 같다. 찬우가 축구공을 들고 교실 쪽으로 가는 게 보인다. 그러다 우리 반 친구들이 각도를 벗어나 첫 번째 CCTV 화면에서 사라진다. 이번에 현관 입구에 있는 CCTV로 카메라 설정을 바꾼다. 이쪽으로 오는 우리 반 친구들이 보인다. 찬우는 맨 뒤에서 축구공을 들고 오고 있다. 찬우가 현관에 거의 다 왔을 무렵. 선진이가 찬우의 공을 힘으로 뺏는다. 그러더니 운동장 한가운데로 던진다. 찬우는 다시 그 공을 들고 현관 쪽으로 걸어온다.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선진이는 다시 공을 뺏어서 운동장으로 던진다. 다른 친구들은 선진이의 행동을 지켜보고만 있다. 선진이는 평소 이런 행동을 할 만한 학생이 아니었다. 친구들에게 친절하고, 선생님께 예의 바르고, 때로 용기를 내 친구들의 나쁜 행동을 지적하기도 하는 학생이었다. 난 그 장면을 내 핸드폰으로 녹화했다. 그리고 다음 날, 수업을 마치고 축구를 한 모든 친구를 교실에 남겼다.
"얘들아. 어제 찬우가 화를 냈잖아? 혹시 너희 찬우가 화를 낼 만한 말이나 행동을 했니?" 찬우 빼고 다른 다섯 명에게 물었다. 다섯 명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아니라고 했다. 그런 적이 없다고.
"그러면 혹시 선진아. 네가 찬우 공을 뺏어서 운동장으로 던진 적은 있니?"
"아니요. 그런 적 없는데요." 선진이가 말했다.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볼래? 찬우가 공을 들고 교실로 가려고 할 때 그런 적 없어."
"없어요."
선진이는 기억이 안 나는 걸까? 거짓말을 하는 걸까? 만약 내가 CCTV 화면을 보지 않았다면 난 선진이 말을 그대로 믿었을 것이다. 난 핸드폰에 저장했던 그 화면을 교실 TV 화면으로 보여줬다. 선진이가 찬우 공을 뺏어서 운동장으로 던지는 그 장면. 그리 다른 친구들은 그걸 구경하고 있다.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찬우는 의외로 말이 없다. 난 선진이가 공을 운동장으로 던질 때 화면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선진아. 이거 기억나니?"
선진이가 말이 없다.
"기억 안 나?"
"기억나요."
"왜? 찬우가 든 공을 뺏어서 운동장으로 던진 거야?"
"찬우가 공을 가지고 가는 게 싫어서요."
"그럼, 네가 가지고 가면 되잖아? 그걸 왜 다시 운동장으로 던져?"
선진이가 또 말이 없다.
"너희들은 이걸 보고 가만히 있었던 거니?" 다른 친구들에게 물었다.
말이 없다.
"너희들이 찬우한테 잘못한 건 알겠니?"
"예."
"이렇게 여러 명이 한 명을 골탕 먹인 건 정말 잘못이야. 찬우가 크게 소리를 지르고 짜증을 낸 건 잘못이지만 너희들 모두에게 책임이 있어."
"다들 찬우한테 가서 사과하렴."
"찬우야.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정말 미안해." 선진이가 말했다. 다른 친구들도 찬우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나도 말했다.
"찬우야. 미안하다 어제는 네 얘기를 확인할 수 없어서 이제야 선생님이 알았구나. 화를 낼 만도 한 일이구나."
찬우는 말이 없었다. 난 찬우에게 미안했다. 그동안 이런 일이 있으면 찬우의 잘못이라고 생각했었다. 찬우는 처음 학생명단을 작성했을 때부터 생활지도가 필요한 학생이었다. 교사들은 한 학년이 끝날 때 다음 학년 배정을 한다. 대부분 학생은 아무 단어 없이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지만, 몇몇 학생은 찬우처럼 어떤 단어가 붙어있다. 생활지도필요, 특수반, 친구 관계 어려움. 등등. 이런 학생들이 한 반에 몰리지 않기 위해서다.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걸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까? 나도 모르게 그거에 너무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떤 선생님들은 학년 배정할 때 그런 단어를 아예 쓰지 말고, 보지도 말자고 한다. 그건 그것대로 일리가 있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고 힘든 학생을 맡았을 때 더 어려움을 겪는 선생님들도 봤다. 찬우는 이제 6학년이 된다. 반 배정을 했다. 여전히 찬우는 생활지도가 필요한 학생으로 분류됐다. 선생님들이나 학생들 사이에서도 제일 유명한 학생이다. 어찌어찌 나랑은 큰 탈 없이 지냈지만, 그 단어는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찬우를 맡은 6학년 선생님을 찾아갔다. 젊은 여자 선생님이었다.
"선생님. 찬우 어때요? 힘드셨죠?" 여자 선생님 말했다.
"과잉행동을 할 때가 있기는 해요. 그런데 조금 있으면 다시 돌아와요. 다른 친구들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요. 선생님께서 찬우만 신경 쓰면 수업 중에도 어려움이 있으실 거예요. 그러니 찬우를 대할 때는 조금 내려놓고 한 발짝 물러나 있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찬우는 언제 과잉행동을 해요?"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요. 또래 학생들과 비교하면 화를 참지 못하는 편입니다."
"심한가요?"
"처음 선생님이 보시기엔 그럴 수 있어요. 저는 그렇게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다른 친구들이 그리 신경 쓰지 않아서 수업을 그대로 진행했어요. 그리고 찬우도 오래 그러지 못해요. 생각해 보면 그렇게 화를 내는 것도 체력 소모가 클 거예요."
"그렇군요. 그리고 제가 또 알아야 할 게 있을까요?"
난 조심스레 축구공 이야기를 꺼냈다. 여자 선생님은 내 얘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내가 말했다.
"찬우에게 미안해요. 그런 일을 학기 말에 알았어요. 혹시 그동안도 그런 일을 겪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더 그래요."
잠시 생각하며 할 말을 찾았다.
"찬우가 화를 내는 게 다른 친구들도 저도 으레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한 거죠. '쟤 또 시작이네.'라고요. 찬우가 원인이었던 거죠. 화를 참지 못하는 아이. 생활지도가 필요한 아이.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난 뒤 다시 보게 됐어요. 그렇게 치부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잘 살펴봐 주세요. 저처럼 학기 말에 그걸 아시면 후회하게 됩니다. 찬우가 결과일 수 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원인이고요. 물론 심하게 소리를 지르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는 건 잘못이죠. 그건 그것대로 바로 잡아야죠."
"그런 일이 있었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선생님."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그 일이 있었던 후 난 학생들의 얘기에 내 생각을 먼저 씌우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거리를 두고 학생들을 봐야 한다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을 한눈에 알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예전에 수업 실기 대회라는 것이 있었다. 교사들이 한 시간 수업 공개를 하고 그것을 참관한 몇 명의 교감과 장학사들이 수업에 점수를 매긴다. 그 대회를 심사했던 장학사와 우연히 저녁 식사를 함께 했던 적이 있다. 내가 물었다.
"수업 한 시간 보고 그 교실에 대해 어떻게 아실 수 있어요?" 내가 말했다.
"딱 5분만 보면 알게 돼요. 나머지 35분은 볼 필요도 없어요. 심사는 끝나있죠. 경력이 쌓이면 그런 안목이 생깁니다."
그때 CCTV를 보지 않았다면 나 역시 그 장학사와 같은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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